법적으로 성인인 무라사키바라와 히무로가 사랑짓거리를 하는 순수한 일상 19금 트윈지입니다.
미래날조책으로, 어른이 되어서 사귀고 있다는 전제로 시작합니다.
두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지 않지만 공통된 세계관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샘플- 후탈
[Special Love]
-무로칭~자는 중?
그럼 새벽 4시 40분에 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얘는. 술에 취한 몸으로 밤늦게 귀가해서 팬티만 남기고 모든 걸 바닥에 던져버린 채 침대에 쏙 들어가서 곯아떨어졌건만, 전날 회식장소에서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수신음 음량을 최고조로 설정하고 되돌려놓는걸 깜빡한 채 옷 주머니 안에 방치한 핸드폰이, 새벽 4시 39분에 좁은 방안에서 지나치게, 잘 반향하는 전자멜로디의 착신음을 울려준 덕에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깨어나긴 했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지금 몇 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몰라~? 나른하게 늘어지는 목소리. 그 너머로 바람소리가 들린다. 밖에 있는 건가. 이 시간에 왜? 근데 왜 전화야? 겨우 잠들었는데 깨워놓다니 등등, 눈을 감은 채 베개에 안면을 처박고 어떻게든 머릿속을 정리하려 했지만, 숙취의 여파로 속이 메슥거려서 올라오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뒤에 들려온 말을 거의 놓칠 뻔 했다. -.......갈게,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어? 뭐라고? 하고 되물을 시간은 부족했다. 터치화면은 올해 정월에 둘이서 놀러갔던 바닷가 사진으로 설정해둔 낯익은 대기화면으로 돌아가 있었다. 히무로 타츠야는 이내 전화기를 떨구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잠시 뒤에 다시 전화기를 들어서, 진동모드로 바꾸었다. 누가 뭐래도 오늘은 쉬는 날 이다. 설령 애인이 새벽에 전화해서 깨우고 염치없이 먼저 끊어버리는 늘 그래왔던 자기 멋대로의 행동을 또 한다 해도, 일어나서 따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시 의식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이대로, 다음날까지 자고 싶었다. 팬티 한 장만 입고 누운 탓에 맨살에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스치면서 사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옷을 입기위해 일어나려면 3일 연속의 학회와 술자리를 다시 되풀이하는 것과 맞먹는 의지가 필요했다. 아직 정신력을 충전하지 못한고로, 히무로는 미련 없이 의식을 놓았다
대학생활. 도쿄생활.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생활. 히무로 타츠야는 그 세 가지 속에 몸을 둔 채 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지나치게 넘친다고 하는게 맞았다. 빡빡한 학사과정, 그 사이사이의 농구부 연습, 대학교의 인간관계가 최우선이 되었다. 지방과 1.5배 이상 차이나는 다다미 6장 반의 월세와 편의점 도시락도 비싸게 느껴지게 만드는 물가는 이제 익숙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전깃세의 앞자리 숫자를 볼 때마다 머리카락이 두세가닥 빠지는 스릴을 안겨주었다. 좋아하는 경기 영상이나 뉴스는 인터넷을 달아놓은 PC로 봤기에, 자리만 차지하는 중고 TV선을 빼놓고 NHK요금징수원을 피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자취하면서 바쁘게 사는 여느 대학생과 같은 일상 속에 단 하나 이질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를 빼면, 히무로는 도쿄소재 명문대학에서 키크고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친절한 이상적인 선배로서 모두의 동경을 받는 꿈과같은 대학생활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무라사키바라 아츠시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먼저 고백하고 키스하면서 순식간에 기정사실을 만들지 않았었다면, 히무로는 아마도 농구를 핑계로 누군가와 사귀는걸 선을 긋고 거리를 둔 채 지냈을 것이다. 그때의 고백은 지금도 꿈에 가아끔 나올 만큼 박력있었고, 사람 마음과 성 정체성을 뒤흔들어서 십수년의 성적취향과 타협을 보게 만들만큼 멋졌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히무로도 가끔 어이없음을 느낀다. 햇수로 3년째였다. 히무로가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원거리로 짬짬이 연락을 주고받는 애틋함과 그리움만 키워가던 1년차에서, 무라사키바라가 졸업하고 대학을 도쿄로 오면서 직접적으로 연인처럼 진도를 빼고 연애초보끼리 할 짓 못할 짓 하면서 오해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미친 듯이 달아올라서 비상계단의 문을 잠그고 시험 하나를 망치고 식탁 위를 더럽히고 머그컵 한 개를 진동으로 떨어트려서 깨먹고, 술먹고 새벽두시에 전화를 하고 다시 화해하곤 했던 불꽃같은 2년차, 그리고, 크게 싸우거나 크게 난리치진 않지만 전보다 조금 덜 만나게 되었고 같이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올해의 3년차까지. 그 3년도 반을 넘기고도 조금 더 지나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결코 길지는 않았다. (중략) 마치 과자로 길 찾으려는 시도를 한 어떤 남매처럼 방문에서 침대까지의 짧은 거리를 벗어놓은 옷가지와 가방으로 수놓은 방 안을 휘익 둘러보고, 이불 밑에서 둥글게 몸을 만 채 이쪽을 쳐다보는 히무로와 눈이 마주쳤다. 변함없이 생각을 읽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아츠시.” 약간 쉰 목소리로 이름을 발성하자, 무라사키바라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침대 옆에 서서, 짙은 회색의 가을코트를 벗어서 마찬가지로 바닥에 던지고 목도리도 풀어서 그 위에 올려놓더니 침대 위에 한쪽 무릎을 올려놓는다. 1인용 싱글사이즈 침대가 비스듬하게 밑으로 가라앉는게 느껴진다. 히무로는 이불 끄트머리를 쥐고 더욱 몸을 말더니,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무라사키바라는 개의치 않고 옆에 누워서, 팔로 거대한 성인남자 크기의 이불뭉치를 끌어안았다. 대학교 와서 조금 더 큰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무라사키바라의 팔은 히무로를 너무나도 쉽게 품에 끌어안았다. 히무로는 손쉽게 속박당하면서도, 이불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조금 따뜻해져서 긴장이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무로칭, 오랜만이다.” “.....일주일, 만인가.” “나 안보고 싶었어~?” “조금.” 진짜로 너무 바빠서 머리에서 떠올릴 틈이 적었다. 그저께인가, 술에 취한채 집에 들어와서는 너무나도 보고싶어서 전화를 걸었는지 발신이력에 이름이 찍혀있었건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중략) “무리해서 병원 갈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 무라사키바라는 대답 없이 좀 더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자, 히무로는 자신의 허리에 닿는 불편한 딱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엉덩이골로 슬슬 비비면서 내려오는 그 감촉에 남에게 말 못할 고민을 안겨준 원인이 고개를 들이밀었고, 자주 받아들인 만큼 그것이 안겨주는 고통과 쾌감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살짝 흔들릴 뻔 했지만 쌓인 피로와 주독이 더 문제였다. 이 상태로 받아들이는거야 하겠지만 움직이는 동안 고대로 혼절할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주도권을 무라사키바라에게 맡겨버리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중략)
샘플- 샤트루즈
[Boys, be Delicious]
이 모든 것은 아주 평범하고 무심한 어투로 꺼낸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무로칭, 몸에도 점 있어?” “응? 글쎄, 여기저기 좀 있는 것 같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무라사키바라의 뜬금 없다 싶은 물음에도 히무로는 아무렇지 않은지 평이한 어조로 대답하며 걷어온 옷을 개키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길게 누워 있는 무라사키바라를 등지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남자의 솜씨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을 정도로 단정하고 반듯하게 접혀 안정적으로 쌓아놓는 옷 더미를 뒤쪽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라사키바라가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무라사키바라도 특별한 생각이나 의도는 없었다. 항상 어긋났다가 오랜만에 둘이 같이 휴일을 맞이하게 된 무료한 주말 오후, 늘 재잘거리고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둔 옆집 이웃이 외출을 했고,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 하나 없이 적막하기 그지 없어서 평소와는 달리 심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을 뿐이었다. 주변이 고요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인지, 무라사키바라는 평소엔 관심은커녕 존재하고 있음을 특별히 인지하지 않아 중히 여기지도 않았던 히무로의 뒷선에 묘하게 눈길이 갔다. 찬찬히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히무로의 뒷모습을 뜯어보던 무라사키바라의 눈에 문득 옅은 얼룩이 눈에 띄었다. 그날따라 넥 라인이 많이 파인 옷을 입어 평소와는 달리 어깨의 중간과 쇄골 부근의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 있어 시선이 더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숙인 고개를 따라 곧게 뻗은 목과 어깨를 잇는 둥근 호선 부근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작은 점이 있었다.
“여기에, 점 있는 거 알았어?” “읏, 어?”
무라사키바라의 손가락 끝이 그 부분을 쿡 찌르자 히무로가 반사적으로 양 어깨를 움츠리며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무라사키바라가 아까보다 눈을 조금 크게 뜨고 히무로 쪽으로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왜 그래?” “아츠시가 갑자기 찌르니까 그렇지. 소름 돋았어.” “흐응…….”
히무로의 대답에 무라사키바라는 미심쩍다는 듯이 낮은 목울림 소리를 냈다. 히무로는 어색한 목소리로 하하 웃으면서 개키고 있던 옷가지를 마저 정리해 두 손으로 쓰러지지 않게 잘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략)
“윽, 아츠시?”
갑자기 허리 위로 찬 바람이 쌩하니 불며 맨 살 위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히무로는 구부리고 있던 몸을 황급하게 세우며 등이 반이나 드러나게 끌어 올려진 윗도리 자락을 다급하게 끌어내렸다.
“뭐 하는 거야! 아츠시 미쳤어?”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빠르게 몸을 돌려 벽 쪽으로 등을 진 히무로의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기서 왜 옷을 끌어 올려!”
차마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고 꾹꾹 누른 목소리로 작게 소리를 치는 히무로를 감흥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무라사키바라가 입을 열었다.
“무로칭, 허리에도 점이 있네.” “…….”
무라사키바라의 나직한 한 마디에 히무로는 할 말을 잃고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몸에 있는 점을 보겠다고 사람 많은 대형 백화점 식품코너 한 복판에서 멀쩡한 청년의 옷자락을 들추어 등허리를 다 드러내 보이는 행동을 태연하게 벌였다는 게 히무로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 건……. 집에 가서 보면 되잖아.” “궁금하잖아. 그리고 누가 본다고.” “알겠으니까 아츠시, 우선 내 옷 좀 놔줄래?”
무라사키바라는 여전히 히무로의 윗도리 뒤쪽 아랫단을 움켜 잡은 채였고, 히무로는 윗도리의 다른 쪽 천을 끌어 내려 억지로 드러난 맨 살을 감추고 있던 차였다. 히무로의 말에 무라사키바라가 눈을 느리게 한 번 깜빡이고선 옷자락을 놓았다. 무라사키바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금 딱딱한 어조로 고맙다고 말한 히무로가 약간은 거친 손길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선 먼저 발을 떼었다. 평소와 같이 무라사키바라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걸으며 말을 꺼내는 행동은 히무로가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무라사키바라는 먼저 등을 보이고 걸어가는 히무로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히무로의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인 무라사키바라가 아까 발견한, 히무로의 어깨 뒤쪽 점이 있는 곳에 손톱을 세워 살짝 눌렀다.
“흣-” “아.”
히무로가 짤막한 신음을 삼키며 아까와 같이 어깨와 고개를 세게 움츠렸다. 히무로의 반응을 재확인한 무라사키바라는 순간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다시 본래의 부루퉁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바꾸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히무로가 참지 못하고 기어이 큰 소리를 냈다.
(중략)
“무로칭 몸에 점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 “그건 갑자기 왜?” “몇 개 일 것 같아?” “적당히 있겠지. 아츠시 나 화났,” “집에 가서 세어볼래?”
12월 서울 코믹월드에 발매 예정인 쿠로코의 농구 무라사키바라X히무로(자빙)오메가버스 AU 19금 소설 수량조사 받습니다.
+오메가버스 세계관입니다. 개인적인 설정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오메가버스에 대해선 검색 ㄱㄱ
무라사키바라가 알파, 히무로가 오메가, 카가미가 알파인 설정입니다.
알렉스도 ts되어 남자,알파로 나오지만 비중은 적습니다.
모브도 조금 나옵니다. 빙->화 묘사가 있습니다. 화빙화...느낌도 납니다. 주의.
폭력,강제 묘사도 있습니다.
해피엔딩 ㄴㄴ해요
성인책인 만큼 신분증검사를 필히 합니다.1인1권 구입.
A5/무선제본/컬러 휘라레표지/74p/8000원
이하 샘플입니다.
무라사키바라 온리전에 배포한 부분입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아니었다. 낮에 있었던 예상치 못한 만남을 회상하는 것 만으로도 감정이 고양되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몸이, 이상했다. 비에 젖은 몸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빌려 입은 의복은 건조했다. 옷장 깊이 넣어둔 채 방치된, 자주 입을일은 없어도 어쨌거나 가지고 있을법한 낡은 옷의 냄새가 났다. 이 옷을 빌려준 주인이 중학생때 입었던 옷이지만, 그럼에도 약간 컸다. 별로 많이 입지 못한 듯 조금 뻣뻣하기까지 했다. 그 감촉이 피부 위로 생경할만큼 느껴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의식해버린다. 정수리 부근에서 붙잡고 끌어당기는 듯 몸과 머리가 분리될거같은 이상한 부유감과 함께 살갗은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카페인 음료를 지나치게 마셨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하루종일 마신것이라곤 물과 약간의 녹차, 스포츠 드링크 그리고 달아빠진 아이스초코 한 모금 정도였다. 살짝 쥐고 있던 주먹 안쪽으로 맥이 빠르게 뛰어서 손바닥에서 벗어날 것처럼 느껴졌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부모님은 멀리 가셨고 형제들은 제각각의 사정으로 인해 집에 아무도 없는 이곳에 이미 귀가시간도 늦었고 씻고 난 이상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손님용 방에 깔아준 이불 위에서 얌전히 자고 내일은 학교로 돌아간다.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역시 지나치게 흥분했던 모양이었다. 언젠가 만날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표정변화가 적어서 안 놀란 듯 보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싶을만큼 놀랐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 남동생이었던 남자와의 재회는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그렇게 결심하고 이불위에 몸을 눕혔지만, 크게 동당거리는 심장에 계속 가슴이 들썩거렸다. 역시나 기분이 이상했다. 들뜨면서도, 발버둥 치고싶고, 힘이 쭉 빠지면서도 힘이 들어가 버리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눈을 깜박거릴수록 점차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숨을 내뱉자, 뜨거운 한숨이 새어나온다. 벌려진 입술이 달싹거렸고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침을 삼키고 몸을 좌우로 눕히면서 눈을 질끈 감고 어쨌거나 잠을 청하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다른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교차시킨 다리를 움직이다가 하반신에 이상한 감각이 집중되는걸 느꼈다. 설마, 그거인가. 침대 밑에서 발행년도가 2년전인 야한잡지를 발견하고, 역시 이런걸 보긴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긴 했지만 별로 취향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성욕이 솟구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물씬 드는 것 치고, 서질-않았다. 하지만 발가락 끝까지 저릿거릴만큼 움찔거리는 감각은 점차 강도를 더해갔고, 계속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감고 있을 때 그 망막 너머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혓바닥 위를 그 이름이 간지럽혔다.
낮에 만난, 남동생이었던 남자의 이름. 얼굴도, 눈도, 머리카락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입술도, 툭 튀어나온 목울대와 벌어진 어깨, 옷 밑으로 드러난 팔의 근육, 기억보다 더 자라고 굳건해진, 시각적으로 다가온 ‘남자’로서의 몸이 카메라를 내리듯 순식간에 머릿속을 지나갔다. 기이한 감각은 고통에 가까울만큼 강해져서, 고통을 억누르기위해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숨을 쉴때마다 등줄기에 오한이 달렸다. 오랫동안 잊었던-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불현 듯 되살아난다. 악몽, 고통, 굴욕, 절망,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몇 년전의 가을로 돌아간 듯 눈을 감을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주체할수 없던 몸뚱아리를 멋대로 잡이 일으키던 거친 팔, 사방을 둘러싸던 거친 호흡, 비가 내릴거같던 흐린 하늘, 등등이 지나갔고, 참지 못한 히무로는 상체를 팔로 일으킨다음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몸이 휘청하고 뒤로 넘어갈 듯 했지만, 만약 자기가 생각하던 그것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이 집을 나가야 했다. 어디로 가든, 이곳에 있을 순 없었다. 왜냐면 이 집에는- 그때 자기를 취하려 했던 저급한 무리들하고 비교도 안될 만큼 강한- 저주스러운 본능이 깨어난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복종할만큼, 지나치게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곧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타하며 걸음을 옳기고 문으로 다가갔다. 이 문을 열고, 무슨 수를 쓰든 병원으로 가야했다. 보기힘든 특수한 케이스인 만큼 일본의 대응이 어떨진 모르지만-게다가 법적으로 미성년자였다- 다시 그런일을 당할바엔 차라리, 하고 결심을 굳힌 순간, 울듯이 올려다보던 상처입은 앳된 얼굴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상대에게 품었던 낮은 감정도. 다시 근원을 알수 없던 고통이 몸을 관통하듯 지나갔다. 괴로움과 수치심에 눈물이 나올 듯 했다. 방금 갈아입은 속옷 안쪽이 갑갑해졌다. 본래 받아들일수 없는 기관이 계속해서 자극을 원하듯 움찔거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서, 누구라도 좋으니 괴로움을 해소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다시 그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한번 더 고통이 스쳐지나갔다. 이 이상은 이성과 자존심으로 억누를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강한 것을 원했다.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만난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문을 벌컥 열었지만, 한발짝도 나갈수가 없었다. 열린 문 앞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러워져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찌만, 체취로 알 수 있었다. 거부할 수 없을만큼, 아니, 감히 거부하고 피한다는게 엄청난 죄를 짓는것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본능의 절규에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뜨거운 것이 흐른다. 그게 눈물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두발로 걷고 손을 쓰며 언어를 구사했지만, 지금은 그저 가장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아있는, 사냥당하는것만 기다리는 먹잇감이 되었다.
[아,]
성대가 떨려서 소리가 나왔다. 별다른 의미도 없을 공기의 울림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닿았을까. 분명히 있었을,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 자존심이나, 그런 것이 사냥당한 짐승의 모피처럼 거칠게 뜯겨져나갔다. 그 밑에 드러난 피투성이 맨살은 무엇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었고, 유린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타들어가는 목구멍 안쪽에서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수 없을 그런 비명이 새어나왔다.
(중략)
[히무로...타츠야!] 그 말에, 히무로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쳐다볼 수 있었다. 아까부터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토록이나 강한 느낌을 주는 상대가, 자신을 알고 그 이름을 불렀다는 것 만으로도 내부의 무언가가 거절할 수 없이 이끌리는 치욕스러운 본능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이가?] 그 상대가, 몇 년전에 헤어진 남동생인 것이, 아주 의외는 아니었다. [여기서 널 만날줄은 정말 몰랐어.] 거짓말이었다. 언젠가는 만날거란걸 알면서, 일본에 왔고, 도쿄에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도쿄로 여행을 왔다. 만날거란 보장은 없으면서도 만날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을 어디에 걸고 왔는지 모르지만, 우연히 참가한 길거리 농구 대회에서, 이렇게 마주쳐버렸다. 경악이 이윽고 차분히 가라앉는 카가미의 표정 변화를 보며, 히무로는 만나지 못한 몇 년의 간극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카가미는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확실한건 카가미가 알파로 각성한 이상, 절대로, 히무로가 경험했을 끔찍한 굴욕은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을거란 것이다.
떠올리기도 싫은, 중학교 2학년의 어느날, LA. 카가미가 가버렸다. 약속은 정제되지 않은 알약처럼 가슴한켠에 쌓여버렸고, 둘 사이에는 빗금을 그은 형제란 이름표만 남아있게 되었다. 목에 걸린 어린시절의 치기가 흔들릴때마다 둔하게 반짝거리는 고통을 느꼈고 그 근원이 되는 이유에서 눈을 돌리고자 매일 홀로 연습에 전념했다. 어린아이는 빨리 돌아가라는 남자들 사이에서 굽히지 않고 시합에 참가했고, 히무로는 언제고 가로막힐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그럴터였다. 모든 것이 뒤바뀐건 여느때처럼 1달러로 시작한 길거리 승부에서 무승부를 내고 귀가하던 늦은 오후였다. [타츠야, 오늘은 컨디션이 안좋은거 같아 보이는데.] [....글세, 오늘은 일찍 가봐야겠어. 다음에 하자.] 팀메이트에게 그 말만 하고, 히무로는 서둘러 코트를 빠져나왔다. 분명히 이길 수 있을 상대건만, 어째서인지 몸 상태가 안좋았다. 갑자기 열이 오르다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등줄기를 달렸다. 몇 번이고 실수를 했고, 겨우겨우 동점으로 승부를 냈지만 스스로 몸상태의 이상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늦은 감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먼저 발을 빼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몇 번이고 숨이 차올랐다. 일 때문에 늦게 오는 부모님 대신 스승인 알렉스에게 가서 차를 얻어타고 병원에 가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향을 선회하여 외곽쪽으로 향했다. 평소같으면 걸어갈만한 거리였지만, 몸상태의 이상이 점점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비가 올거같은 흐린 하늘아래 습도가 여느때보다 공기를 탁하게 했다. 한발짝 옳길 때 마다 식은땀이 흘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열이 온 몸을 감싸다가 달아나면서 오한을 느끼는 몸살과도 비슷한 통증이 반복되어서, 집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도중에 잠시 앉아서 쉴 생각으로 편의점 옆에 나있는 공원길로 들어섰다. 지저분한 벤치위에 앉자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중략)
[오메가로 살아가기 싫다고? 그게 가능해?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정해진건데. 노력해서 알파가 되지 못하는 것 만큼 베타가 되는건 더 불가능하고~ 무로칭도 머리가 있으면 알거아냐.] 히무로는 입을 딱 다물었다. 더 이상 불리한 공격은 피하겠다는 듯. 말없이 몸을 일으키고 시트 위에 앉으려다가, 앉는 부분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약을, 써서. 언제 발정기가 올지 몰라. 주기적으로 오는게 아니야.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아츠시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어. 미안하게 생각해.] [미안해할 이유가 있어? 난 나쁠거 없었고.] [.....] [난 무로칭 나쁘지 않았어.] (중략)
샘플 추가했습니다.
[내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녀석하고 자고 싶어도,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 나 말고 있어? 운동부에 굴러다니는 별거 아닌 열성 녀석들한테도 다리를 벌려도 괜찮다면야, 그걸로 당신이 만족한다고 해도-] [아츠시.] 그만, 이라는 뒷말은 듣지 않고, 얼굴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키스했다. 조금 강하게 부딪혀서 입술이 아팠지만, 상관 않고 잡아먹을 듯 빨아들였다. 하지만 이내 반항했고,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입술은 떨어졌지만, 히무로의 옷깃을 잡고 벽에 짓누르듯 밀어붙여서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퍼부어주지 않고는 성이 차질 않았다. [학교 안에서, 농구부에서 무로칭이 오메가에 공용변기란 소문이 퍼져서 돌아다니면 어쩔 작정이야? 설령 당신이 상관하지 않는다 해도, 난 상관있으니까. 다른 덜떨어진 녀석들 앞에서 그런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거, 상상만 해도 짜증나거든? 계속 학교를 다닐 작정이면 좀 더 현명하게 처신 하는게 어때? 그것도 못 알아들을 만큼 일본어를 까먹은 건 아니겠지? ]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시선이 마주쳤다. 히무로의 얼굴은 굴욕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벽에 밀어붙여져서, 옆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리 사이로 무라사키바라의 무릎이 파고들었다. 어제, 이성을 잃을정도로 정사를 나눈 육체가 맞붙었고 그 밑에서 뛰는 심장은 위험을 느끼고 다시 동당거리기 시작했다. 무라사키바라가 눈을 치켜떴다.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고, 히무로의 목 뒤로 돌아가 뒤통수를 감쌌다. 다시 입술이 부딪히기 직전에, 다시 무라사키바라를 밀쳤다. 히무로의 오른손이 무라사키바라의 얼굴을 막았다. 하지마,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어제 느꼈던, 세상의 모든 과자를 합친것보다도 맛있게 느껴졌던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 향이 살풋 느껴졌다. 샤워하고 급하게 나왔는지, 아직 히무로의 뒤통수의 머리카락은 약간 축축했다. 자신의 입을 막은 히무로의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아 벽에 짓눌렀다. 그리고 한번 더 키스했다. 벌려진 입술 틈으로 혀가 밀려들어온다. 히무로는 눈을 콱 감고, 얼굴을 찡그린채 받아들였다. 무라사키바라는의 가슴 한켠이 바늘에 찔린 듯 아려왔다.
(중략)
히무로만한 오메가는 학교 어디에도 없었고, 오메가 판정을 받은 소수의 여학생들조차 평소의 히무로에겐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다들 그저 히무로를 베타, 혹은 숨은척 하는 열성 알파로 생각하지, 차마 오메가일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히무로의 다른 얼굴을 알고있는 것은 자기자신 뿐이고, 그걸 알아버렸기에, 히무로가 단지 오메가로서의 발정기를 처리하기 위해 자기를 선택했을뿐이란 것도, 무라사키바라는 알고 있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스스로의 집착심과 독점욕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감을 못잡고 있었다. ‘히무로 타츠야’라는 인간이 아닌, 보기드문 우성 개체의 오메가로서 볼때는, 지나가는 열성 알파가 말을 거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기고 아닌 척 방해를 하곤 했다. 일종의 영역지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몸을 섞을때가 아닌 ‘히무로 타츠야’라는 개인으로서 대할 땐- 그저 팀메이트에, 학교 선배일 뿐이었다. 히무로가 섹스를 할때마다 카가미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오메가’ 가 아닌 ‘히무로 타츠야’ 개인의 문제였다. 마음 따위 어찌 되었든 몸을 소유할 수 있는 자신이 승리자, 라는 우월감이 있다는 걸 무라사키바라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사실습실에서 뒹군 이후로, 한동안 발정기가 오질 않았다. 다행히도 그해의 윈터컵을 준비할 시기라, 학교와 운동만으로도 시간과 체력이 다 소비되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적었다. 두 사람은 팀으로서 호흡이 맞았고, 예선시합은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대회를 위해 도쿄로 내려갔고, 숙박시설인 호텔에서 둘은 같은 방을 썼다. 하지만 어떤 접촉도 하지 않았다. 발정기가 아닌 이상,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윈터컵. 카가미 타이가와의 시합은, 무라사키바라에게 가장 쓴 추억으로 남겨졌다. 추억으로 부를 것도 아닌, 짜증나는 기억. 그 정도 였지만 그로인해 섹스하지 않을 때의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변화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어쩌면 무라사키바라의 일방적인 기대였던걸까. 시합에서 지고나서 히무로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히무로 타츠야’ 로서의 무언가를 떨쳐낸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오메가’로선 어떻게 되는걸까.
8월 서코때 나온 [W에이스는 W데이트]와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시간축은 공유하고 있습니다.
1편을 안보셔도 무난합니다.
기본적으로 자빙+ 화 + 청 이 나옵니다. 만 메인커플 외의 커플성향은 낮은편입니다. 그래도 커플성향에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_;
윈터컵 끝나고 애들이 2학년 올라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캐붕/미래날조 있습니다!
이하 샘플입니다.
“들어봐, 타이가. 이건 정말 너무하다고, 어떻게 된거냐면,” “그래, 이걸로 다섯 번째야, 타츠야.” “너 머리가 많이 굵어졌구나.” LA의 햇살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미소- 라 하기엔 그 밑의 주먹이 상당히 아픈 의형제의 얼굴을 외면하고 카가미는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거지. 카가미 타이가는 머리를 감싸쥐고 한번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익숙하게 올려다보던 자신의 집 거실 천장이었지만, 여느때보다도 더 높아보였다. 가을도 아닐텐데. 카가미는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휴일인 토요일 아침에, 그의 의형제인 히무로 타츠야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났을때만 해도 이런 사태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고2씩이나 되었으면 자기 성적도 관리할줄 알아야 하지 않나요, 하고 방학숙제에 대한 구원의 손길을 차단한 쿠로코와 덤으로 옆에서 혀를 내미는 1호, 그리고 자기 발등의 불이 더 바쁜 1학년 삼인방에게 거절당한 충격으로 밤새 책상에 앉아 공부 흉내를 낼려다, 머리 좀 식힐겸 TV를 틀었더니 마침 농구경기 해설영상이 나와서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새벽 2시가 돼서 내일모레면 개학인데!!! 란 절규와 함께 쓰러져 잠들어버린 카가미를 불러일으킨건 머리맡에 던져둔 핸드폰의 착신음이었다. 헉, 하고 경련하듯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밝은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들어 격자무늬 그림자를 침대에 그리고 있었다. 눈을 깜박거리다가, 일단 핸드폰을 손으로 잡았다. “.....여보세요.” “굿모닝, 타이가.” “타츠야??” 그 상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익숙한 목소리였다. 밝고 상큼한 목소리에 잠이 조금 깼고, 카가미는 자세를 바꿔서 침대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편하게 앉았다. “오랫만이야, 무슨일?” “타이가, 아직 방학 안끝났어?” 3월의 3학기가 끝나고 4월의 신학기가 시작할 때 까지 잠깐 주어진 짧은 봄방학. 추위는 저물었지만 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르고, 성급한 몇몇은 잎도 나기 전에 꽃잎부터 피워서 아직 쌀랑한 바람속에 작은 따스함을 주듯 길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히무로가 거주하는 북동의 아키타는 아직 더 쌀쌀할 터였다. “내일까지야. 타츠야도?” “우린 내일 모레. 화요일에 개학이야. 도쿄는 많이 따뜻해졌어?” 등등의, 나른함이 묻어나지만 그야말로 가족끼리 할수 있을 편안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카가미는 자기 발등의 불이 무릎까지 타고 올라오는 중인걸 깨달았다. “으으, 타츠야. 나 숙제 때문에 큰일났어....” “왠 숙제? 설마 유급?” “그런거 아냐! 우리 감독이 낸거야.” 이제 수험생이 되는 세이린의 선배들과 감독의 의향은, 저번처럼 시험성적으로 부활동의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자기들이 바쁜만큼 도움을 주기가 힘든- 아니 상식적으로 수험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며 웃는얼굴로 만들어준 2학년 교과과정 예습 자습서가 1학년들에게 한권씩 배부되었지만, 카가미는 아직 열장도 하지 않았다. 안하더라도 2학년에 진급은 문제없었다. 어디까지나 선배들이 개인적으로 내준 숙제인만큼 안해가도 문제가 되진 않을- 터였지만, 금요일에 쿠로코와 후리3인방과 게임센터에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즈키가 ‘ 방학 숙제를 안해서 리코가 바락 죽네! 어...아니다 이건. 안해가면 너희들 죽을지도 몰라’ 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하다만 개그를 쓸쓸히 주워담고 사라지며 남긴 말 때문에, 그제야 방학숙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1학년들은 밀린 숙제의 양을 생각하고 기함을 토하며 해산했다. 카가미는, 도저히, 이걸 왜 해야하는지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건- 차가운 강아지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안하면........ 죽을지도.” “저런저런, 타이가. 힘내.” “....아....근데 타츠야, 무슨일로 전화한거야?” 침대에 빨려들어가듯 우울한 분위기속에 문득 그게 생각나서 묻자, 히무로도 아참, 하고 전화기 너머로 까먹었다가 기억해낸 듯 한 소리를 냈다. “아니, 다른게 아니라 지금 신칸센 탈려고 하는데, 도쿄로 갈거라서. ”
어째서 카가미와 히무로얘기밖에 안나오는지는 나중에 나옵니다 하고 우겨본다
구매의사가 있으신 분은 비밀댓글로 원하시는 수량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통판은 코믹 끝나고 진행합니다.
사족으로, 구간인 [W에이스는 W데이트]도 재판분량만큼 받아서 소량 들고갈 예정입니다.
표지는 제가했지
A5/24P/중철/전연령에 여전히 카가미 많이 나오고 쿠로코도 덤으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윈터컵 끝난 직후의 겨울방학이 배경입니다.
이하 샘플입니다
"지치지도 않네, 저 둘." "그러게 말입니다. 섭취한 열량을 남김없이 소비하는 모습이 참 친환경적이군요." "음? 오히려 산소를 지나치게 소비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니, 비환경적인게 아니려나."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동물들이 가엾지 않습니까." "아하, 과연." 겨울 하늘에 해가 지금이라도 떨어질듯 걸려있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매우 큰 남자와 그보다 더 큰 남자가 쉴 새 없이 자리를 바꿔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집중 하는건, 그 큰 덩치와 비교하면 참 작게 느껴지는 농구공 하나. 농구화의 마찰음과 공의 탄성이 추운 공기를 가열시킨듯 두 사람은 각각 후드티랑 니트 하나씩만 입은 채 땀에 절어있었다. 그 모습을 약간 떨어진 벤치에서 한사람- 아니, 두 명의 남자가 미소와 무표정을 반씩 섞은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진짜! 이제 그만해! 짜증나! 콱 짓눌러버린다" 극적인 덩크를 후려쳐서 막은 무라사키바라가 짜증이 넘치는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하자, 아직 한창 집중 중이던 카가미가 인상을 팍 썼다. "뭐? 아직 더 할 수 있다고!" "시끄러 바보눈썹. 무---로-----칭---! 이만하면 되지 않았어~? 나 그만할래~~" 무라사키바라는 이마에 땀으로 들러붙는 머리카락을 소매로 대충 넘기고 터벅터벅 기린같은 걸음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히무로와 쿠로코에게 다가갔다. 카가미가 뒤에서 '야!! 도망치냐!!'하고 불러보지만 이번엔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아츠시, 한창 재밌었는데 왜 그만둬?" "저 녀석 여전히 짜증나고, 열혈이고, 바보같이 시끄럽고, 하나하나 덤벼들고, 역시 카가미녀석 싫어. 짜증나. 쿠로칭 잘도 저런 미네칭보다 멍청한 녀석 찾았네. "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입니다." "어이, 쿠로코! 거기선 아니라고 해! 이자식!" 카가미도 뒤쫒아오고, 땀으로 범벅된 토토로 +8cm의 남자와 토토로 -10cm의 남자가 벤치 앞에 나란히 서있으니 긴 그림자가 앉아있는 두사람에게 드리워진다. 히무로는 무라사키바라의 코트를 건네주고, 쿠로코도 카가미의 코트를 건네준다. "이걸로 아까 마지바의 햄버거 20개가 소모되었군요. 수고했습니다." "아--- 배고파졌다. 저기, 쿠로코, " "집에가서 혼자 처드세요. 보고있으면 제 식도가 역류할거 같습니다." "너......아까부터 좀 심하지 않아.......?" "그건 너의 기분탓입니다.." 그런 주고받기를 한쪽귀로 들으면서 히무로는 새삼 무라사키바라를 올려다보았다. 목이 뒤로 꺾인다. 일어서야겠다. "아츠시도, 아까 먹은 케이크 뷔페를 전부 소모한거네." "별로. 저런 녀석 상대하는데 먹은거 전부 쓸 필요도 없구." "그런 것 치곤 엄청 집중해서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하, 수고했어." 입김이 흩어지면서 히무로가 활짝 웃었다. 카가미는 그걸 옆눈으로 보면서 '저쪽은 저러는데 왜 나는......'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쩐지 히무로의 미소가 살짝 굳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추운 곳 에서 가만히 앉아있느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쿠로코도 늘 유지하는 무표정 페이스가 평소보다 더 무표정해 보이는 건 역시 기분탓인가. 카가미로선 현재의 파트너와 옛 형제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짐작도 안가는 부분이다. "무로칭, 나 무로칭이 말하는대로 카가미와 1on1했으니까 , 호텔 1층에서 파는 고급만쥬, 사주는거다?" "그래그래. 감독님이랑 선배들에게는 비밀이다?" "....타츠야, 나, 만쥬밖에 안되는거...?" "만쥬가 카가미보다 우월한게 당연한거잖아, 만쥬에게 사과해, 바보 눈썹." "만쥬에게 사과하세요, 카가미군." "어이!!야!! 쿠로코 너까지 왜그래!!!" 잘못하면 울겠다. 히무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리진 않았다.
"카가미군, 어릴 때 부터 그렇게 먹었던 건가요...." "그렇다니까. 공부는 못했는데 요리에 관한 창의력은 남달라서, 참 잘 만들고 잘 먹었어. 그때부터 이미 성인의 평균 식사량 이상으로 먹었던가..." "지금은 인간의 평균 식사량 따위 가볍게 뛰어넘었지요. 근데 왜 먹은 게 뇌로는 가지 않는 걸까요?" "응...... 태어나서 그런 점수는 진짜 처음 봤어. 미국에 와서도 그런 점수는 있을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지. 타이가는 여러가지 의미로, 나에게 세상은 넓다는 걸 알려주었어." "있어도 소용없는 세상을 말이죠." 천천히 한사람분의 식사를 음미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주체는, 두려워하던 바 카가미였다. 그야말로 끊이질 않고 솟아오르는 소소한 화젯거리에 두 사람은 약간 고양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자기 일처럼 떠벌리는 여고생들의 고양감, 옆집 부부와 뒷집부부의 말다툼으로 새로운 드라마를 창조해내는 주부들의 고양감과도 비슷한 그런 감각에 두 사람은 빠져들었고 ,카가미가 짐작한대로 무라사키바라도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까이기 시작했다. "아츠시의 내부는 마이우봉과 포테칩과 사탕만 소화시키는 별도의 공간이 있지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어." "공간은 공간이지만, 아공간일지도요." "아공간?" "아까전에 나온 Eternal gate요" "풉" 물론 거기에는 깊은 애정과 애정만큼의 다른 감정도 진하게 섞여있었고, 쿠로코는 민감하게 그것을 캐치했다. 자칭 포커페이스에, 무슨생각을 하는 지 알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니만- 쿠로코 눈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어색했다. 키세라면 분명 질리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떠들어댈거고, 아오미네라면 다른 의미로 대화거리가 떨어지지 않아서 쉴 새 없이 대화(?)를 했을거고, 미도리마는 으르렁거리다가 자연스레 무시하는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사키바라는, 노골적으로 카가미를 무시하면서도 히무로에 관련된 화제에 관해선, 시합 외에도 친분이 생각보다 있었던 건지 이것저것 케물었다. "무로칭 싸움 많이 했어?" "어....나보다 잘 할걸. 시비 걸리는 일이 많아서, 동양인이 참으면 그만큼 얕보인다고 두 배로 갚아줘야 한다고 웃으면서 말했었지. 난 시비 걸린적 없지만." "넌 바보처럼 보이니까 시비 걸 필요도 없었던 거 아냐? 뭐, 무로칭 약해보이고~" "wha.....never mind." "뭐라고 시부렁 거리는거야" 하다하다 보니 대화가 이어졌고, 한때 버리려 했지만 다시 목에 걸려있는 반지 얘기가 나왔다. "헤-에-그 반지, 무로칭이 먼저 하자고 한거야? 유치해~애도 아니고~" "네놈이 유치하단 말을 입에 담냐......아니, 애였으니까, 그땐." "흐응..... 그래서 덥석 받아서 한거야? 애도 아니고." "아니, 애였다니까!!초등학생!! 뭐....이 나이 되서 하자고 하면 좀 그렇겠지만 그땐 어릴 때의 치기랄까, 들뜬 마음에." "그게 변명할 일?" 무라사키바라는 왠지 그 반지가 맘에 안들었다. 윈터컵 이후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 같은 감정이 남아있는데, 그 원인이 이 반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히무로가 다시 목에 걸고 있는 반지를 볼 때마다 '커플링?'이라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겉보기에 부루퉁해져 있었다. 카가미는 괜히 설명해야겠다싶은 쫒기는 듯한 충동에 절로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뭐...타츠야하곤 해외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에, 나이도 비슷했고, 농구도 가르쳐줬고, 농구이외에도 여러가지 같이 놀았고,알렉스랑도 ....아, 내가 왜 이런얘길 너한테 하는거지. " "변명할만큼 찔리는게 있는 거 아냐." "변명을 왜 해! " 역시 대화가 길어지면 싸움으로 번진다. 카가미는, 벌써 헤어진지 30분이 다되는데 그동안 둘이 어디에 가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 남자 둘이서 남의눈에 띄지않고 갈만한곳이 어디있단 말인가. 무라사키바라는 망충하게 '무로칭이랑 쿠로칭 과자나라로 갔으려나~'같은 말을 했고 카가미는 맥이 탁 풀리는걸 느꼈다. "...너, 쿠로코가 갈만한 곳 짐작가는데 있냐?" "쿠로칭이면~ 서점갈려나? 예전엔 편의점가서 과자 같이 사먹었는데. 아, 과자. 사야해." 그리고 손에 들고있는 과자가 없다는 걸 무려 30분이나 지나서 깨달은 무라사키바라는 아까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편의점을 목표로 코끼리처럼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마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없었다. 저걸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카가미는, 나도 포카리나 마셔야지 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칼피스 1리터를 한 번에 다 마시는 놈은 첨 봤다." "하아? 포카리1리터 그자리에서 다 마신 주제에 뭔 소리야." 캔커피를 원샷하듯 각각 1리터짜리를 원샷한 두 거구는 빈 페트병과 종이곽을 편의점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무라사키바라는 대형마트 크기의 비닐봉투에 꽉 들어찬 과자중에 마이우봉을 꺼내들고 바스락바스락 갉아먹기 시작했다. -저게 그렇게 맛있는건가? 참고로 카가미는 그런 불량식품이나 막과자류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먹어도 배도 안 부른 스낵류보단 주먹밥이나 빵이 양이 더 많았고, 막과자류는 일본을 떠난 이후 접해보질 못했다. 그래서 먹는걸 보자니 매우 신경이 쓰였지만 하나 줘보란 소리는 눈썹이 뽑혀도 말 못할거라 애써 흥미없는척 하고 아까 산 스니커즈를 하나 오물거리기만 했다. 다시 대화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흔치않은 높이의 두 남자들이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먹으면서 서있는 모습을 지나가는 커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카가미는 세 개째의 스니커즈를 빼물고 지금 이렇게 무라사키바라와 나란히 서있는 상황에 대해 덜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표지 계속 수정중입니다)
2. 익애(溺愛)
(십구금. 연령확인 필요)
무라사키바라X히무로X카가미
3P묘사 있습니다. 자빙->화빙으로 왔다갔다합니다.
히무로가 매우 알수없습니다. 카가미도 무라사키바라도 이상합니다.
해피엔딩 아님. 취향타는 내용 있음.
일단 다들 대학생인 AU입니다;
B6떡제본 60페이지
흑백표지
소설입니다. 삽화는 없습니다.
웹에 일부 공개한것+ 추가분량 5페이지 예정입니다.
가격- 4500원
[타츠야, 좋아해.]
전에 없을 만큼 진지한 눈빛과, 저녁노을에 역광 진 이목구비가 어딘가 뿌옇게 보였다.
아까까지 같이 웃으며 걸어온 길의 끝에서 갑작스레 현실감이 저멀리 탈출해버린 그런 감각이 들었지만 히무로의 귀에 들어온 말은 계속 메아리쳤다.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해. 나도 물론..] [타츠야가 먼저 말하길 계속 기다렸어. 나도 용기가 없었으니까.........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란 거, 알잖아.]
그렇게 말하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카가미의 얼굴은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히무로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눈앞의 카가미를 볼 수가 없었다. 몸은 이곳에 둔 채 기억만이 한달 전 으로 날아갔다.
- 어차피 안 되는거 알잖아? 그냥 나로 하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중, 의자 뒤에서 다가온 그 말에 일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속 고민하고 번뇌하던 문제를 칼로 반등분하는 그런 말투에 잠시 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 어째서 ? 왜 거기서 네 이름이 나와? 아츠시가 엮일 문제가 아닌걸. - 나는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 자식은 아무것도 모를걸. 아니, 형처럼 생각하던 사람이 자길 생각하며 자위 했다는 걸 알면 분명 기분 나빠 할지도? - .......
의자를 돌려 등 뒤에 앉아있는 남자를 노려봤다. 남의 집에 수시로 들이닥쳐서 공부 하는걸 구경하고 툭하면 밥 먹자고 불러내는 이 후배의 직설적인 화법은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히무로 또한 무라사키바라를 상대로 돌려 말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았고, 둘 사이의 대화는 배려와 조절을 상호합의하에 생략하여 지극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다소 감정을 마모시키긴 했지만, 잘못 알아들을 염려는 없어서 좋았다.
- 동생은 그냥 동생으로 놔두고, 죄책감 가질 필요 없는 나로 해버려. 당신, 버림 받는거 무서워하잖아. 그래서 계속 말 안한 채 형제로만 있으려 하는 거고. 난 적어도 내 쪽에서 먼저 놔주진 않을 거니까. 무로칭이 날 버리면 모를까.
진지함은 찾아볼수도 없는 가벼운 말투지만 농담을 말한 역사가 없던만큼,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잴수가 없었다. 여전히 무표정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저 눈빛은 이쪽의 마음을 바닥까지 꿰뚫는듯했다.
그리곤 그 큰 덩치를 펴서, 의자에 기대듯 파묻혀버린 히무로에게 다가와선 허리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히무로는 눈만 들어서 올려다봤다. 이 후배가 결코 싫은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다. 어느쪽이냐면 '적합'하게 좋아했다. 무라사키바라는 한손으로 히무로의 턱을 잡아올리고, 말없이 키스했다. 손도, 입술도 건조했다. 그렇게 붙었다 떨어졌지만, 히무로는 거절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라사키바라가 한 말이 가슴 언저리에 박혀서 천천히 녹아 아리는 통증이 조금씩 번지는걸 느꼈을 뿐.
-난 포기 안할거니까.
그리고 그 상태로 덮쳐눌러서, 의자에서 밀어트려 바닥에 짓누르고, 거부하는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없는 히무로와 건조하게 욕정을 나누었다.
(중략)
얼마 전까지 남이었던 남자에게 고백을 받고 반강제로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남동생이었던 남자와 새로운 관계가 되어 오늘 다시 만난다. 이건 어떤 단어로 설명할수 있는 관계가 될까. 히무로는 사람이 수없이 오가는 번화가에 서서 약속된 시간이 오길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전에 없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타츠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커다랗게 귀를 울렸다. 멀리서도 눈에띄는 커다란 덩치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이 상기되서 밝게 빛나는 듯 했고, 어딘가 눈부시게 느껴져서 미소를 답하는게 조금 늦어졌지만, 카가미는 신경 안쓰는듯했다. 가까이 마주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새삼스레 쑥스러워진 걸까, 카가미가 안절부절 못하는듯 하다가 어디가자고 말했다. 그래, 하고 카가미의 뒤를 따라 가는데,팔이 뻗어나와서 손목을 잡더니 옆으로 끌어당겼다. 나란히 걸어가는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타이가.]
이름을 부르자, 카가미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서 히무로와 눈을 마주쳤다.
[아니, 그냥. ]
그렇게 대답하고 싱긋 미소짓자 카가미가 새빨게져선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고 휙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예상대로라서 쿡쿡거리며 웃었고, 카가미는 히무로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귀까지 벌겋게 달아올라서, 귀엽게 느껴진건 말 안하기로 했다. 첫째날은 무난히 식사하고, 여태까지와 다를바 없을 ‘형제’처럼 보내고 헤어졌다. 이후 히무로는 카가미와 이틀에 한번 꼴로 만났다. 만나봤자 하는일은 다를게 없었다. 같이 밥먹고, 가끔 쇼핑을 하거나, 공원에서 농구를 하거나, 같이 산책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한쪽이 고백을 하고 다른 쪽이 그걸 받아들인 이상-다른 호칭이 필요한 관계였다.
[ 타츠야, 저녁에 어디 가야해?]
네번째쯤의 데이트에서, 카가미가 그렇게 묻자 히무로는 고개를 저었다. 저녁에 무라사키바라가 오겠다고 했지만, 카가미의 고백을 받아들인 이후 전부 거절하고 있었다. 카가미에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피하기만 해선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마주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에서 눈을 감고, 히무로는 왜 하고 물었다.
[이따가 우리집..그..올수있나 해서. ]
(중략)
잠그고 나갔을 문이 안에서 저절로 열리고, 그 사이로 보인것은- 무라사키바라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신장차이 때문만은 아닐 처져보이는 눈매. 무심하게 다문 입가가 커튼사이로 나타난 유령처럼 눈앞에 나타나자 일순 히무로의 심장은 크게 뛰었고, 상대를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여벌열쇠를-맡긴 기억은 없었다. 어느 샌가 몰래 빼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츠시라면 할거 같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츠시, 하고 이름을 불렀다.
[무로칭, 늦었어. ] [아...오늘 다른일 있다고 말했잖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고] [그야, 보고 싶었으니까. 한참 못봤잖아. 무로칭 요즘 전혀 나 볼려고 하지도 않고. ]
변함없는 목소리와 변함없는 톤, 변함없는 말투. 무라사키바라가 하는 말은 평소대로였다. 며칠동안 히무로가 겪었을 내면의 갈등과 고민따위 전혀 모른다는 듯이, 나른하게 늘어지는 어린애 같은 어투가 다소 가라앉았던 불안감을 다시 헤집어 분진이 일어날 듯 했다.
[..미안, 아츠시...피곤해서, 일찍 자고싶어. 미안하지만 돌아가줄래? 내일 만나자.]
간신히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그렇게 말했지만, 무라사키바라는 여전히 무심한 무표정이었다. 삐진것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히무로는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느꼈다. 아츠시는, 감이 좋다. 수상해보이고 싶진 않았다. 일단 마음을 정리한 후에, 헤어지는 쪽으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츠시와 헤어진다? 거기서 위화감을 느꼈다. 헤어지는 것이, 타당한것인가. 아츠시와 타이가는........ 갑자기 그런생각이 들었지만 피곤해서 그런거라 여기고 무시한 후 아츠시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츠시도 내일 학교가야 하잖아. 정말 미안. 내일 만나자. 응?] [나 저녁때부터 기다렸는데, 무로칭 나한테 연락한번 안해주고. 나 섭섭해.] [미안.....그치만 오늘은 안된다고 했잖아.] [무슨일이 있었는데 그래? 좋은일? 누구랑 만났어?]
일순 심장이 철렁했지만,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히무로는 계속 부드럽게 옷으면서, 무라사키바라의 어깨를 툭툭쳤다. 돌아가, 하는 표시였다. 현관으로 들어서서 신발을 벗으려는 차에, 무라사키바라가 히무로가 입고있던 셔츠의 밑단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