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피어싱
“몇 개째?”
그 질문에, 손가락을 말없이 움직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서 눈을 마주쳤다.
낮이지만 구름에 가려 새하얀 하늘 때문에, 불을 켜지 않은 거실은 희미한 빛이 약간의 명암을 만드는 것 말고는 회색 그림자로 덮여서, 명확한 분간이 가질 않았다.
싱긋 웃는 얼굴에 약간의 빛이 더해진 기분이 들었다.
“다섯 개, 인가. 하나는 막혔고. 이걸로 여섯 개째.”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라사키바라는 소파에 누운 채로 손을 뻗어서,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기댄채 무언가에 열중하던 히무로의 귀를 손끝으로 잡았다.
오른쪽 귀에 두 개, 왼쪽 귀에 세 개. 귓바퀴와 귓불에 각자 하나, 그리고 두 개씩 박혀있는 금속덩어리의 차가움이 따뜻한 맨살의 온도와 섞여서 더욱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말랑한 귓불을 꿰뚫고 관통한 피어싱의 둥근 마감은 남보다 배는 굵은 손가락으로 쥐기도 어려울 만큼 작았다. 하지만 딱딱함은 손끝에 박히듯 느껴졌다. 그 부분을 계속 만지작거리자, 히무로가 손을 들어서 무라사키바라의 손가락을 겹쳐서 잡았다.
“간지러워.”
“양쪽에 하나씩 할때가 그나마 괜찮았는데, 이 이상 늘리면 솔직히 좀.”
“그래? 하나만 했을땐 되려 게이같단 소리를 들었는데.”
“그땐 왼쪽귀에만 했었잖아.”
그렇게 말하고 다소 강하게 꼬집듯이 그 부위를 누르자, 히무로가 어깨를 약간 떨었다. 약 1년전의, 말랑한 귓불이 다 드러나 있을때가 더 좋았다.
“아츠시.”
히무로가 웃으며 그만해, 하고 난처한 듯 말하자 그제야 무라사키바라는 손을 떼었다. 약간 발개진 귓불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귓불에 하나, 귓바퀴에 하나. 왼쪽 귓불에 두 개, 귓바퀴에 하나. 그럼 오른쪽 귓불에 하나 더 들어갈 예정인가.
히무로가 끼우는 피어싱은 늘 심플했다. 특별히 터널로 고정시켜서 확장할려는것도 아니고, 코뿔소같은 긴걸 끼우는것도 아니고, 번화가에서 지나칠법한 체인을 주렁주렁 늘어트리는 옛날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가장 가는 굵기의 단순한 볼로 고정시킬 뿐이었다. 그래도 충분히 잘 어울렸지만. 너무 늘어나는건 좀 막고싶었다.
무라사키바라는 누워있는 채로 다시 팔을 뻗어서 히무로의 목을 감았다. 아까 샤워하고 나와서 머리카락이 젖어있는 뒤통수를 끌어당기자 히무로가 자세의 밸런스를 잃고 약간 휘청했다. 이윽고 다시 자세를 잡더니, 무라사키바라에게 끌어안긴채로 다시 고개를 돌려서 눈을 마주쳤다.
가볍게 닿을정도로 키스하더니, 무라사키바라의 이마를 한번 손바닥으로 쓸어주고 톡톡 두들겨줬다. 조금 이따가, 하는 표시였다.
“무로칭, 앞으로 몇 개나 할려고?”
“맘에 들때까지?”
“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히무로가 다시 싱긋 웃었다.
“그럼 아츠시가 대신 뚫을래?”
“예전에도 말했지만, 난 아픈거 싫어.”
이미 몇 번인가 주고받은 대화였다. 세 개째 피어싱을 뚫을 때, 네 개째 피어싱을 뚫을 때, 얼마전에 고의로 잃어버리게 한 다섯 번째의 피어싱을 뚫을때도. 히무로는 아닌 듯 권유했지만 무라사키바라는 딱 잘라 거절했다. 멀쩡한 살에, 쇳덩이를 관통시키는 행위는, 솔직히 말해 이해할 수 없는 자학적인 취미 영역으로까지 보였다. 예전처럼 반지나, 목걸이를 할것이지. 그러고보니 최근엔 타투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그것만큼은 싫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보류중이었다. 완전히 아물지 않는 흔적같은걸, 뭐 때문에 하나뿐인 몸뚱이에 고의로 남기는걸까.
“별로 안아파. 그냥, 한번에 끝나.”
“아프든 말든 그거 계속 남잖아. 아픈건 무로칭 혼자서 해줘.”
“하하, 매정하네.”
히무로의 의도는 알고있었다. 하지만 무라사키바라는 일부러 모른척한다는걸 감추지 않았다. 히무로가 지워지지 않을 ‘흔적’에 약간 집착한다는걸, 눈치 못챌만큼 둔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응해주지 않는 자기에게 일말의 불안감과, 야속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 또한 눈에 보일 듯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수없이 관계를 가졌지만, 둘은 서로를 연인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단어로 지칭한 적이 없었다. 아직도 대외적으로는 선후배, 혹은 친구였다. 무라사키바라는 입꼬리만 올려 웃는 히무로의 얼굴을 마주한 채, 이다음엔 입술에 하겠다고 말을 꺼내지 않을까 그걸 좀 걱정했다. 키스할 때 느낌이 이상한건 달갑지 않았다.
무라사키바라가 거절할때마다, 히무로는 피어싱을 하나씩 더 늘려갔다.
히무로가 피어싱을 하나씩 더 늘릴 때 마다 무라사키바라는 그걸 지켜봤다.
서로 단어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평행선처럼 계속해서 이어질 그런 주고 받기가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나 혼자 할거니까, 놔줘.”
그렇게 말하고 무라사키바라의 팔을 풀더니, 히무로가 몸을 일으켜서 일어났다. 오른손에는 계속해서 쓰던 펀칭이 들려있었다. 처음부터, 혼자서 했다. 자기손으로 자기 살을 뚫다니, 말도안돼 하고 우우 거리자 히무로가 웃으며 그걸 딸깍거리며 보여줬다.
“무로칭 사실은 아픈거 좋아하지?”
“난 그런 취미 없어.”
딱 잘라 말하고, 리빙룸의 테이블 앞에 앉아서 평소 눕혀두는 거울을 접어서 세우더니 예전에도 몇 번 보여줬던 관통하는 행위를 준비했다. 하얀 창문으로 역광이 져서 무라사키바라를 향하는 옆모습은 어두웠다. 머리칼 밑에 가려진 몇 개의 금속만이 둔한 빛을 발하는걸 보며, 무라사키바라는 저도 모르게 일어났다.
“이번엔 내가 해줄까?”
그렇게 말하자, 히무로가 막 힘을주려던 손가락을 멈췄다. 귓불을 물고있던 작은 도구를 스르르 빼내더니 무라사키바라를 올려다보았다.
“한다고?”
“아니, 내가 해준다고. 무로칭한테.”
“뭘?”
“귀. 그거.”
대화가 약간 연결이 안되는건 둘다 휴일이라 늦잠을 자고 아침도 안먹은채 눈을뜬 직후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전날의 여파일까. 히무로는 언제 개수를 늘릴 결심을 한걸까. 생각없이 지나간 오전의 몇시간을 되새기다가 나온 결론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아츠시가?”
“자기 손으로 하는것보단 덜 아플거 아냐.”
“아니, 그렇다고......”
히무로 옆에 쭈그려 앉아서, 손에서 펀칭기를 뺏어들었다. 그리고 왼쪽 손가락으로 히무로의 귓불을 잡았지만- 히무로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내가 할게.”
“애도 아니고, 나도 그정도는 할 수 있거든?”
“아츠시에게 맡기기엔 불안해.”
“그냥 남의 손으로 아픈게 싫은거 아냐?”
“꼭 내손으로 아픈건 좋아한다는것처럼 들리는데?”
“아니었어?”
무라사키바라가 약간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쳤지만, 히무로는 이내 시선을 피했다. 귀를 붙잡은 손가락을 가볍게 쳐내고 무라사키바라가 쥐고있는 도구로 손을 뻗었지만, 뺏지 못했다. 공을 뺏을때처럼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히무로가 한숨을 쉬었다.
“이리 내놔, 아츠시. 어린이가 손에 닿지 않는곳에 둬야해.”
“와~ 신선. 오랜만에 무로칭이 날 애취급했어.”
“지금 하는짓이 딱 그거잖아. 어서.”
물론 무라사키바라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히무로가 하는 말을 남들보단 들은 편이지만, 지금건 별로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무로가 계속 손을 뻗어서 뺏으려 해서, 천천히 일어나자 히무로도 뒤따라 일어났다.
“아츠시, 그건 장난감이 아니야.”
“무로칭 이리 앉아봐. 안 아프게 해줄게.”
“안 아프게 한적 없잖아.”
“그건 침대에서의 얘기지.”
히무로의 표정이 약간 분노쪽으로 변했다. 무라사키바라는 다시 소파에 앉아서, 손짓을 했다. 히무로가 다가가서 용서없이 도구를 낚아채려 한 순간 다리를 뻗어서 히무로의 하체를 가위처럼 붙잡았고, 끌어당겼다. 휘청 하고 듬직한 남자의 몸이 정면으로 쓰러졌지만, 무라사키바라는 익숙하게 한쪽 팔만으로 받아내서 옆으로 눕혔다. 끼익 하고, 두사람의 체중에 눌린 소파가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무로칭, 가만~히 있어.”
“앗, 좀.....싫다니까! 내손으로 한다고!”
이제야 잠에서 깬 목소리를 낸 히무로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말이 버둥이지, 수틀리면 제대로 직각펀치가 날라올지도 모르는 각도라서, 무라사키바라는 일단 펀칭기를 왼손으로 쥐고 오른손으로 히무로의 정수리를 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히무로의 오른쪽 귓불을 입술끝으로 물었다. 이미 뚫려있는 부분도 건드려서, 혓바닥에서 약하게 쇠맛이 났다. 히무로의 움직임이 크게 한번 일더니 무라사키바라의 어깨를 팍팍 치기 시작했다.
뭐하는짓이야, 라는 질문에, 귓가에 불어넣듯이 소독. 하고 대답하자 다시 퍽퍽 두들겼다.
“간지럽잖아! 아츠시, 잠깐.....”
한소리 더 해줄려는 참에, 살짝 축축한 귓가에 차가운 금속이 접촉하는게 느껴져서 히무로는 움직임을 딱 하고 멈췄다. 무라사키바라의 오른손이 왼쪽 후두부와 측면을 감싸듯 고정시키더니, 짓누르던 무게가 살짝 덜어지고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히무로와 눈을 마주쳤다.
“여태까지 몇 번이나 해놓고, 왜 이제와서 부끄러운척이야.”
“아츠시에게 섬세한 작업은 처음부터 기대도 안하니까 그런거야. 위치 잘 봐가면서 해야 한다고. 좌우 균형 맞춰서 하는게 쉬운줄 알아?”
“아까 볼펜으로 표시해둔 곳에 하면 되는거 아냐?”
닿을락말락, 차가운 금속이 일점을 자극하는 느낌에 히무로는 약간 긴장했다. 조금만 손을 움직이면, 늘 느끼던 익숙한 살덩이의 파육음과 함께, 등줄기를 살짝 찌릿하게 하고 가라앉는 짧은 통증과 함께 타오르는 일순의 미묘한 감각을 느끼고, 너무나도 쉽게 관통당한다. 그것을 알기에, 하지만- 스스로 손 끝에 힘을줘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언제 타인의 손에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그전까지완 다른 긴장감을 줬다.
“무로칭, 언제나 태연한 표정으로 하더니, 긴장한거 같아.”
“.........”
“아님, 기대하는거?”
한 대 칠려다가 참는 듯 무라사키바라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이 움찔 했다. 무라사키바라는 금방이라도 철컥 소리를 낼듯한 보기보다 정교한 작은 도구가 손 안에서 미끄러질거같아서, 짧게 심호흡을 했다.
무라사키바라의 몸 밑에 깔린 히무로의 다리가 천천히, 밸런스를 무너트리지 않게 조심하듯 움직이더니, 약간 자세가 느슨해졌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걸 받아들였는지, 몸의 긴장을 풀려는 듯 가슴께가 살짝 들썩였다.
“.......뭔가 무로칭, 처음 할 때 같아.”
“이따가 두고보자고, 아츠시.”
“응, 대신 이따가, 나한테 해도 돼. 특별히 하나만.”
예상치 못한 그 말에 히무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두께가 0.5센치도 안될 얇은 살덩이가 관통당하는 소리는, 철컹하고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몸 밑에 밀착되어 있는 히무로의 육체가 움찔하고 떨리고, 마주하는 얼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짧은 몇초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
“해버렸다~ 어, 이거 그냥 손 놓으면 되는거야?”
저지르고 나서 조금 조심스러워진 무라사키바라의 손을 히무로가 붙잡더니, 천천히 놓게 했다. 뚫린 구멍에서 조금 피가 흘러나왔다. 삐걱하고 무라사키바라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소독약.”
“핥으면?”
“저쪽에 있는거, 가져와봐.”
시키는대로 테이블위에 있던 솜과 소독약을 건네주자, 히무로도 몸을 일으키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솜에 소독약을 적셔서 오른쪽 귀를 소독했다. 무라사키바라는 여전히 흐린 빛 속에 그 모습을 눈부신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테이블에서 거울과 피어싱 통을 가져다 주자, 거울을 보지도 않고 조물조물 하더니 어느새 발개진 귓불에 새로운 피어싱이 생겼다. 이번건 은색보다 조금 짙은 크롬색이었다.
“.....아파?”
“얼얼해. 오늘까진 좀 아플거지만, 내일부턴 괜찮아.”
“피어싱, 왜 하는거야?”
처음 귀를 뚫고 나타났을때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에 히무로는 ‘이제야 그걸 물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물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답도 준비해 놨고?”
“아니, 대답하지 않을려 했어.”
“그럴거 같아서 묻지 않았어.”
말장난같은 주고받기에, 히무로가 약간 비틀리게 피식 하고 웃었다.
“아츠시가 생각하는 이유와 비슷할거야.”
그게 뭔데, 하고 묻고 싶었지만, 구태여 묻진 않았다. 그런거 일일이 말로 해서 확인할 만큼의 관계도 아니었다.
조금씩 저며가는 변화속에, 남는 것은 변화뿐인 그것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날 무라사키바라가 처음으로 귀를 관통당할때의 느낌은, 역시 무로칭 자기손으로 이런걸 할줄은 엣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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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령을 유지하는게 제일 힘들었다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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