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하이큐!! 우시오이-If I had (not) you

후타리 2014. 10. 19. 00:24

우시->>오이
이와이즈미 사망 네타 있습니다.
예전에 전력으로 쓴 우시오이-약 의 파생입니다. 캐붕주의 해석주의.


(스압주의)

<1>



우시지마가 이와이즈미의 사망소식을 접한건, 발인으로부터 2주가 지난 날이었다. 외국 배구팀의 용병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1년을 보내다가 계약이 만료되고 일본으로 귀국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과거 팀메이트였던 동료와 그간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에 그러고보니, 하고 튀어나온 말로 알게 되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비운을 맞는 젊은이는 수도없이 있다. 길거리에서,외국에서,고의로 혹은 타의로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나이에 아깝게 가버린 목숨에 대한 기사를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한줄 들었다가, 이내 일상으로 사라져간다. 그런 일상속에서, 친구는 아니더라도 면식이 있고 서로의 이름을 알고있는 같은나이의 남자의 죽음은 우시지마의 마음 속에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와이즈미는 과거 중학생때부터 하나의 공을 두고 네트 너머에서 마주하던 사이였다. 한번도 그를 이기지 못한 다른 평범한 선수들보다 유달리 우수했다, 고 평가할 만큼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는 고등학교 이후 더이상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우시지마는 이와이즈미를 다른 선수들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 그러고보니 오이카와 말야, 사실은...
그의 죽음은 국내 프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 오이카와의 근황 속에 묻어가듯 나온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생각했다.
단순히 친구가 아닌, 팀메이트이자 소꿉친구이자 인생의 반 이상을 형제만큼 친밀하게 보낸 상대가 죽었다. 그 남자가 받을 충격은 아마 우시지마가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거대할 것이다. 언제나 감정풍부하게 잘웃고 잘 비웃고 짜증을 내고 분노를 감추지 않는, 나이에 비해 감정표현이 직설적이던 오이카와의 뒤통수에 공을 날리며 잔소리를 하던 이와이즈미의 잔상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둘은 중3때도, 고3때도 주장과 부주장의 관계로 우시지마의 앞에 나란히 섰다. 똑같이 도전적이고 적의를 감추지 않는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둘 중에,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쪽은 높이 평가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자기와 비교할 만큼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시지마보다 일년 늦게 프로팀에 들어온 오이카와와 마주한 이후, 오이카와의 시합을 보러 온 이와이즈미와 몇번 시선을 마주쳤지만 대화한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언제나 오이카와 같이 있었고, 오이카와가 없을땐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우시지마의 머릿속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와 같이 있는 남자, 정도의 인식이었다.
그 이와이즈미가, 죽었다.
듣기로는 자동차 사고였고, 오이카와도 같이 타고 있었지만 오이카와는 생명에 지장이 없고 이와이즈미는 그자리에서 즉사. 병원에 옳기기 전에 이미 사망판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상당히 심한 상태였을거라고.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 사고로 어깨부상을 당했다. 재활을 하면 가망이 있지만 이제 선수는 은퇴하는거지, 하고 오이카와의 근황을 짧게 전달받은 뒤, 우시지마는 말없이 다른 흥미없는 선수들의 이야기도 듣고, 오후부터의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떴다.
해외에서 활약하고 귀국한 스타급 배구선수의 이야기와 이후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고 난 뒤에는 한가했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친구였던가? 돌아가.

인터폰으로 성명을 밝히고 나온 대답은 이랬다. 기계음을 한번 거치고 나오는 목소리는, 주소가 오이카와의 것이었으니 오이카와의 목소리라고 알았을 만큼 변질되어 있었다.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꺾은듯, 녹슬고 우그러진 문을 억지로 열었을때의 비명같은.

"어제 귀국했다. 사고 소식을 오늘 들었어. 그래서,
-그래서? 조의를 표한다? 나도 그저께 퇴원했어. 너랑 얘기할 힘 없어. 돌아가.

그리고 탁, 하는 거절의 소리와 함께 전자음이 끊어졌다.
어쩔 수 없다. 우시지마는 발걸음을 돌렸다. 몸과 마음 양쪽 다 너덜너덜 해졌을 남자와 억지로 마주칠만큼, 둘은 친하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신변을 정리해서 그의 가족이 돌봐줄 고향으로 돌아가는게 최우선 아니겠는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주변에서 보듬어주는 시간이 필요할것이다. 그리고 우시지마는 그런것은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주일가량 고향인 미야기에 가서 보내던 우시지마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팀메이트에게서 또다른 소식을 들었다. 세이죠 출신 녀석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데 그 친구에게서 들은 오이카와의 친구의 이야기였다. 몇다리를 걸쳐 들은얘기인진 모르겠지만, 이와이즈미의 죽음은 미야기의 몇군데에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계속해서 미야기에 살았고, 직장도 이쪽이었다. 휴가를 내서 놀러간 도쿄에서 죽음을 맞이한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고 그의 친구들은 말한다. 글쎄, 오이카와에게 있어선 어느쪽이었을까. 친구가 자기와 상관없이 멀리 있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소식을 듣는것과, 자기와 같이 있을때 죽음을 맞이한 것.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후자만큼 지독한 악몽은 없었을것이다.

-세이죠 다녔던 오이카와 말야, 사고소식 들었어?
-들었구나. 암튼 그 사고 이후로, 몸을 다쳤으니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가족들이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않았다나봐.
-계속 도쿄에 있겠다고. 그래서...

그가 펼친 꿈이 꺾어지고, 그의 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친구가 명운을 달리해버린 도쿄에 오이카와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불길하다 느낀것은 직감때문만이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친구가 아니었고 그의 내면에 관한건 무엇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른사람 마음을 읽고 대처하는건 지독하게 못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그가 느낀 예감은 오이카와 토오루 라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였기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인터폰으로 들었던 그의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변질되었던 목소리. 그것이 귓가에 붙어 계속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 "
그날 저녁 문답무용으로 신칸센을 타고 내려가서, 도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다. 택시를 잡는것도 힘들었다.
문명의 이기를 빌려서 아무리 빠르게 온다 한들, 그의 마음만큼 급하진 않았다. 인터폰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다. 한옥타브 높은 차임벨만 태평스레 울려퍼지고, 우시지마는 주먹을 꼭 쥐고 현관문의 두께를 가늠하다 이내 포기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불이 켜져 있는 관리인실로 갔다. 친구는 아니었지만 과거 시합을 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술자리는 몇번 가졌고, 술에 취한 오이카와한테 어린애가 놀리는듯한 욕설과 짜증을 들으며 집까지 데려다 준 덕에 관리인이 아직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서, 오이카와의 집의 마스터키를 빌려달라는 부탁에 의외일만큼 금방 끄덕여줬다.
-그 댁 모친이 걱정을 많이 해서, 혹시 저 청년 친구가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꼭 그렇게 해 달라고 미리 말을 하고 갔어요. 많이 힘든 모양이던데, 요즘 통 안나와서.
그런 얘기를 들으며 열쇠를 받고 다시 오이카와의 현관 앞에 섰다. 이번엔 벨을 누르는 일 없이, 열쇠를 넣고 돌렸다. 문은 금방 열렸다. 다른 잠금장치를 걸어두지 않은게 의외였다. 문을 열면 어두울거라고 생각했는데, 밝게 불이 켜져 있었다. 거실을 밝게 비추는 조명 아래 특별히 어질러지지 않은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썰렁했다. 초가을이지만 난방을 하지 않아서인지 공기가 싸늘했다. 둘러본 거실이 난잡하게 엉망이라면 오이카와의 힘든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거실은 평소 사람이 쓰는 만큼만 어지러져 있었다. 약 일년반만에 와보는 이곳에 특별한 이질감은 없었다.
그것이 이상했다. 아무 일 없어보이는 것이.
부엌에 눈을 돌리자, 물병이 몇개 놓여있을뿐 식사한 흔적은 없었다. 차라리 술병이 늘어져 있는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오이카와의 침실로 향했다. 체구와 체중이 있는만큼 걸음을 옳기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그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기만 했다.
문을 열자, 오이카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이 탁 풀릴 만큼 조용하게 침대에 누운채 미동도 없이 잠자는 것처럼 보였다.
우시지마는 큰 걸음으로 다가가, 눈을 감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했다. 하지만 조금씩 들썩이는 가슴께는 그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보여주었다. 맥이 탁 풀리고, 뭣하러 여기까지 와서 강제침입을 한건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완전 폐인몰골로 널부러져 있을 모습을 상상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인가.
자는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끓어 올랐다. 우시지마는 괜히, 누워있는 그의 이마 위로 손을 내려 짚었다.
놀랄만큼 차가워서, 다시 흠칫 놀랐다.
"오이카와."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냥 자는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차가웠다.
가슴께까지 덮은 이불을 걷어내자, 도저히 잘때 입을거 같지 않은 검은 정장을 입은 몸이 드러났다. 위아래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 이건 상복이 아닌가.
"오이카와."
한번 더 이름을 부르고, 우시지마가 서있는 침대 반대편의 바닥에 무언가를 발견했다. 침대를 빙 돌아서 그것을 보니, 텅 비어있는 여러개의 유리 앰플, 그리고 주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유리앰플은 우시지마도 익숙히 아는 것이었다. 부상이 심한 선수가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쓰는 진통제였다. 그것이 세개나 빈 병으로 뒹굴고 있는 이유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누워있는 오이카와의 덜미를 잡고 억지로 일으켜서 뺨을 때렸다. 배구 선수의 손으로 맞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죽어있지 않는한 그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옆 얼굴 위로 무성의하게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양 뺨을 잡고 소리쳤다. 오이카와!!! 그리고 그 소리에, 기적처럼 오이카와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가늘게 세상의 틈을 연결하는 입구가 열리는 것에 우시지마는 다시 소리쳤다. 오이카와가 누워있는 침대 위에 올라타서, 몇번이고 이름을 부른다. 이윽고 천천히, 무거운 무언가에 저항하듯 들어올려진 눈꺼풀 안쪽의 눈동자는- 탁했다.

"오이카와!!!"

천천히, 깜박거린다. 코앞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듯,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달싹거린다. 그 틈으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마주친 눈동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을 만큼, 우시지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넌 뭐야.

우시지마는 다시 한번 뺨을 때렸다. 반대로 돌아간 고개에도 오이카와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양 뺨이 붉게 달아올랐고 입 안쪽이 터졌는지 벌어진 입술틈으로 피가 한줄기 흘렀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듯했다. 진통제를 약으로 삼킨거였다면 토하도록 유도시킬 수 있지만, 주사는 의료진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멱살을 놓질 못했다.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것 만은 아니었다.

-왜 너야.

그 시선에, 반쯤 미쳐갈만큼 분노하기 시작한 자기자신을 깨달았다.

몇번을 더 뺨을 때리든 얼굴만 찢어질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의식을 차리긴 한 듯 눈을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문득 다시 바닥에 떨어진 병을 보자, 그중 하나는 진통제가 아니라 근육이완제였다.

"오이카와, 너는 죽을 생각인거냐?"
물론 대답은 없었다.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근육이 쓰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모를것이다. 입술을 달싹거리긴 했지만, 목 아래 모든 근육이 느슨하게 풀어진 상태라 목소리를 내는것도 힘들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이카와의 고의였다.

"이와이즈미를 따라 죽을 생각인거냐?"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귀는 막지 못할것이다.
"이와이즈미가 죽은게 너의 잘못인가? 그건 아니라고 들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건 이와이즈미 쪽이었다고. 게다가 상대편의 과실이라고 들었어. 네 책임이 아니잖아. "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있어 현재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오이카와가 더 자기를 싫어하는 것도.
오이카와의 일방적인 적의는 지난 십여년동안 늘 일상적이었다. 호의? 한번도 받지 못했다. 둘은 친구가 아니었고, 우시지마도 오이카와를 친구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오이카와의 집에 침범하여, 오이카와의 의지를 무시하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오이카와 안에서 자신이 달라질 일은 없다는걸 알면서도, 우시지마는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이카와는 스스로 죽으려 한다. 그걸 자기가 막고 있다. 이렇게 한들 감사의 인사는 절대 돌아오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 "

감긴 눈은 떠지지 않는다. 지긋지긋해, 그만 불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었다.
멱살을 놓고 오이카와의 상체가 다시 침대에 파묻혀 지자, 우시지마는 그 위로 올라탔다. 넥타이를 거칠게 끌러서 던지고, 단추를 전부 잠근 정장을 뜯어내듯 벗겨서 어깨 밑까지 당겨서 내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단추를 전부 잠근 하얀 셔츠를 좌우로 찢어버리듯 열었다. 단추가 투둑하고 튀어나갔고, 셔츠도 마찬가지로 어깨 밑으로 끌러 내렸다.
오른쪽 어깨에 수술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팔을 들어올리는 관절부터 팔꿈치까지, 사고 상황이 짐작이 가는 끔찍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소독하고 꿰메고 접붙여도 아마 다시는 원래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지독한 흔적이 있었다. 그 상처를 눈으로 흝어 내리다가, 다시 오이카와의 눈을 마주쳤다. 경악, 분노, 혐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우시지마는 손을 들어, 상처자국을 건드렸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가가 확 찌푸려졌다. 진통제를 과다로 맞았으니 고통은 없겠지만, 상처에 손이 닿이는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수술자국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살을 기우고 뼈를 맞춘, 형태만 유지할 뿐인 어깨와 팔을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 끝으로 잔혹한 감촉을 전부 느끼며, 거칠게 움켜쥐었다.
입술이 달싹인다. 목소리가 나왔다면 아마도 갈라지는 비명과 욕설이 나왔을것이다. 그거라도 듣고 싶었다. 눈빛만으로 거절하는 시선보다, 살아있는 목소리가 듣고싶었다. 시트 위에 놓여있는 손가락은 아주 조금 움직이고 있었다. 말초신경은 아직 깨어있는걸지도 모른다.

"의식을 놓은채 잠들면, 네가 원하는 대로 고통없이 호흡을 멈출수도 있겠지, 오이카와. 네 시체는 정장을 입은채 그대로 땅에 묻히고, 원하는 대로 이와이즈미를 따라갈 수도 있겠지. 그게 네가 원하는거라면, 너의 친구들은 그렇게 놔둘수도 있겠지. 하지만."

오이카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머리를 감은 듯, 희미한 샴푸 냄새가 났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청결히 했을 생각을 하면 역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분노하는 것일까. 이와이즈미의 죽음에는 커다란 감흥이 없으면서, 오이카와가 죽으려 하는것에 이토록 거부감이 들었다.

"난 너의 친구가 아니야, 오이카와. 그러니 난 내가 하고싶은 대로 널 죽게하지 않겠다. "


희미한 샴푸 냄새. 목 아래에는 향이 적은 비누 냄새. 상처 부위에는 소독약 냄새가 난다. 차갑고, 아무 힘도 없이 늘어져 있는 육체는 희미한 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귀밑에 가져간 우시지마의 얼굴이 천천히 그 위로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상처부분을 누르면서, 다른손은 베개 위에 묻힌 오이카와의 후두부를 받쳐서 고정시키고, 가늘게 숨만 흘리는 입술을 잡아먹듯 겹쳤다. 입이 막히고, 코로 겨우 숨을 들이쉬는듯 짓눌린 가슴이 약하게 들썩거렸다. 방금전에 때려서 터진 입 안에서 피맛이 났고, 우시지마의 혀가 그것들을 전부 핥았다. 입 안은 바짝 말라있었지만 온기가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오이카와의 혀는 당하는 대로 휘저어졌다. 다시 우시지마의 눈동자가 오이카와와 마주쳤다. 우시지마는 그것을 무시했다.
손이 밑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계속 유니폼 혹은 선수복 으로만 보아온 남자의 몸의 윤곽이 손 아래에 느껴진다. 언제나 근육이 팽팽히 당겨져 있던 몸은 일년전에 보았던 그때보다 확연히 줄어있었다. 가슴을 지나서 늑골 옆으로 내려가서 허리에 걸쳐져있는 바지를 풀었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계속 입안의 타액을 일방적으로 주고받고 있었고, 오이카와는 목소리를 못 내면서도 약한 신음을 흘렸다.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나는 오이카와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었던가? 이전에 오이카와를, 같은 남자를 보며 성욕을 느꼈던가? 대답은 아니다 였다. 스스로 하는 행동에 정당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행동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의 갈래를 바꿔야 했다. 나는 오이카와를 좋아하는 것인가? 반은 맞았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알았다면 아마도 질색했을,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주구장창 무시당해서 보이지 않았을 뿐, 그는 오이카와를 결코 싫어한 적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유연하게 행동했다면, 친구로 지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이카와에게 이런 행동을 하고자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입은 오이카와의 입을 막고 억지로 휘젖고 있고, 손은 움직이지 못하는 몸에서 옷을 벗기고 맨 살을 거칠게 쓸고 있었다.
행동에 정당성은 없었다. 하지만 목표는 있었다. 오이카와가 죽지 않게 하는것.
그의 의식을 깨어있도록 하고, 자기에게 집중시키고, 몸이 굳지 않게 움직이게 하는것. 그리고 자신이 느낀 이 분노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

"오이카와. "

다시 이름을 불렀지만, 오이카와는 분노와 혐오를 감추지 못하는 눈동자로 대답할 뿐이었다.




몇시간 후에는 목소리를 내고, 다리를 움직여서 차버릴듯 했지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놔주지 않았다. 고통은 거의 느끼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어깨가 깔리지 않게 받쳤지만 흔들리는건 어쩔 수 없었다. 아까까지 창백했던 얼굴은 일그러지고 상기되어서 눈물과 땀이 흐르고 있었고, 숨을 쉬는지조차 의심할만큼 얇게 흔들렸던 가슴은 오열을 참는것인지 크게 들썩거렸다. 좌우로 크게 벌려진 허벅지 안쪽에 튀었던 액체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상복이 오이카와와 우시지마의 다리 밑에 깔려 구겨졌다.

"오이카와. "

이름을 부르고, 다시 안에 들어갔다. 결코 허용받지 못했던 그의 마음 대신, 죽고자 내던졌던 몸의 안쪽으로.

"오이카와."

세상이 전부 삐걱거린다. 마음도, 그 기반도. 모든것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균열이 발생하여 공기조차 삐걱거렸다. 숨을 들이쉬면, 아까까지 남아있던 샴푸와 비누 냄새는 흔적도 없다. 몸에서 나온 체액이 시트에 스며들고, 그 열기에 어질할 만큼의 살냄새가 공기를 채운다. 그것을 들이마시고, 우시지마는 이제 겨우, 오이카와의 '몸'이 죽지 않은 것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었다.
마음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눈을 뜬건 목이 졸라져서 숨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자 그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오이카와의 양 손이 우시지마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우시지마는 그 손을 붙잡아 크게 힘들이지 않고 떼어낼 수 있었다. 한쪽 손은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침대 위에서 헐벗은채 목이 졸려서 눈을 뜨는 경험은 쉽게 할수 있는게 아닐 것이다. 우시지마의 손에 잡힌 손목을 빼내려는듯 오이카와가 버둥거렸지만, 우시지마난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눈이 마주쳤다.
"미친...놈...."
갈라지고 탁한 목소리. 우시지마는 그 말이 자기를 향하는것임을 알았다. 실제로 어제 한 행동은 정신이 제대로 박혔다면 하지 않았을 행위였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나한테....미친...이런....."
헝클어진 머리카락 밑으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오이카와의 얼굴이 보인다. 일년반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때 어떤 얼굴이었던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얼굴 아래의 몸은 어제의 흔적이 역력했다. 몇번 거칠게 물었던 목덜미와, 실수로 이빨이 스친 가슴, 억센 손가락이 지나간 허리. 허리 아래는 이불이 감겨있었다. 새벽에 눈을 감은 오이카와에게 덮어주고 그 옆에서 잠들었던게 기억이났다.

"오이카와. "
"...으,내 이름,부르지마..!"
"오이카와. "
"닥치라고, 개자식아.."
"오이카와!"
"...죽어버려,너같은거...!"

오이카와가 작게 어깨를 떨었다. 손을 놓자, 떨리는 손이 다친 어깨쪽으로 올라가서 부여잡았다. 그리고 몸을 둥글게 앞으로 말아서, 고개를 숙이고 신음했다. 진통제의 효과가 끊어진만큼, 배로 아픔이 느껴지는것일까.

"오이카와, 병원에는 가지 않는것인가."
"...아파,아프다고,아파,아파....아파......."

남들보다 큰 체격의 남자가 온몸을 움츠려서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어제 그 몸에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남긴것이 자기자신임을 알면서도, 우시지마는 한때 같은 선수로 있던 남자의 움츠러든 모습에 연민을 느꼈다
.
"아프단말야,......쨩....이와..........읏......"

이 자리에 없는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억눌렀던 것이 터진듯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우시지마는 그의 오열을 들으며, 오이카와의 등을 손으로 쓸었다. 이윽고 격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다.

"손대지마,나한테..손대지 마."
"그럼, 이제 안죽을건가?"
"꺼져, 나한테 손대지 말라고..!"
"오이카와. 난 너를 죽게 놔두지 않을거다. "
"닥쳐,닥쳐,그래서, 하하, 이런짓을 한거야? 나한테??응? 아, 아파, 손대지마,돌아가....!!"

고개를 들고 우시지마를 노려보는 얼굴은, 아주 조금, 어릴때 보았던 것에 가까워져 있었다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단순히 그의 바램이 보여주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와이즈미가 죽었다고, 너까지 죽을 필요는 없어."
"제에발 부탁이니까, 닥치고 돌아가, 제발..."
"너는 살아야한다."
"왜?"


고통과 분노에 꺽꺽거리다가, 오이카와가 한마디를 뱉었다.
왜 살아야 해? 선수로서의 생명도 끝나고, 친구도 죽고, 평생 이런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해?

왜?


"너한테..,이런 짓까지 당하면서, 왜 내가 살아야해....!개자식아..! 살아갈 이유가, 대체 어디 있는거냐고..!"

우시지마는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스스로 알고 있었다. 구태의연한 위로를 내던져서 이 남자의 마음을 바꿀 생각도 없었다. 오이카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이유가 없어도, 너는 살아야 한다. "
"대체, 왜,"
"너는 아까우니까."

웃음이 기침처럼 터진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던 오이카와가 경련 비슷하게 몸을 떨면서, 웃었다. 힘이 몸에 완전히 돌아오진 않은듯, 웃는것도 힘들어져 숨만 가쁘게 쉬지만, 얼굴은 다른 방향으로 일그러졌다.

"내가?하, 이런,몸인데, 그렇게 아까워? 미쳤어? 미친줄, 알고는 있었는데, 하, 미친놈."
"오이카와."
"치워, 차라리, 이와쨩은, 내가 살길 바랬다고, 그런 정론이라도 늘어놓으란 말야, 하."
"난 이와이즈미는 잘 몰라. 그가 무얼 바랬는지도 내 알바 아니야. 나는 네가 살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 이유가 없어도, 그래도 사는게 너의 역할이다. "

주변의 연민과,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상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재활, 미래가 불투명한 처지.
그 모든것을 감내하면서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그저 살아있기만을 이기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