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전력 60분 [카게오이- 꽃]
하이큐! 전력 60분 참가
[꽃]
카게야마 토비오X오이카와 토오루
카게오이...지만, 그냥 카게+오이로 보일거 같아서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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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과 마주한 중학교 1학년의 4번의 계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작과 같은, 약간 서늘함이 남아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몸을 상해버릴 따스한 봄.
모든 것이 녹아내려서 질척거릴 만큼 뜨겁게 타올라서, 온 몸이 말라버릴 거 같던 여름.
마치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서로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그 사이의 바람을 느낀 가을.
그리고 겨울.
입학식의 꽃이 피고, 지고. 여름의 담쟁이 덩굴에 꽃이 피었다가, 지고. 가을에도 꽃은 피었다. 그리고 겨울의 꽃.
겨울의 꽃은 아직 피지 않은 걸까. 손끝이 차가워지고, 입김이 하얗게 결정화한 단어가 차갑게 얼어 떨어진다. 머리카락 밑으로 드러난 귓불은 감각이 없었다. 이 추운 겨울에, 다음 달 부터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겨울에 피지 않는 꽃 대신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차가운 바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난 고등학교 1학년의 봄.
벚꽃이 전부 지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났고, 꽃을 찾을 수 없는 체육관에서 다시 만났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원래 중학교가 같았던 만큼 집은 그렇게 멀지 않았고 통학하는 거리가 길어졌을 뿐 집은 그대로라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그 사람은 대놓고 싫은 표정, 혹은 경박하게 놀리는 표정, 여자들과 있을 때는 아예 무표정하게 무시하거나, 예전에 보았던 조카와 있을 때는 매우 싫은 표정으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나는 후배 된 입장에서 저처럼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켕기는 지라, 꼬박꼬박 무시당하는 인사를 했다.
가을이 지나면서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혼자 돌아오던 길에 마주친 그 꽃을 보며, 나는 겨울이 가까워지는 걸 깨달았다.
체육관에선 맡을 수 없던 꽃향기가 섞인 바람이 저 멀리 떠나가듯 불어오고, 얼마 후엔 마지막으로 네트 너머에서 마주볼 날이 다가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절대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하고, 그리고-
그러면 내년의 꽃이 피어나서, 새로운 1년을 맞이하고, 그리고-
이제는 시합에서 조차 마주치지 못할 그 사람도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
어째서 2년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학년, 아니 하다못해 1년만 차이나는 학년이었어도, 조금 더 오래 같은 코트에서, 혹은 다른편 코트에서라도 마주할 기회가 있었을 터인데.
갓 중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내가 그걸 붙잡을 기회를 잡기도 전에 도망치듯 졸업해서 고등학교로 떠나갔다. 서는 무대가 달라졌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여태까지 못해왔던 여러 가지를 새로 배우면서 겨우 같은 무대에 섰을 때, 그 사람은 아직도 내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서서 나를 패배시켰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번의 시합. 목전에 다가온,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 되어버릴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초조하게 하지만 흥분하고 있었다.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그런 반면, 나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한번 얼굴을 마주쳤을 뿐인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사람과 같은 학년에 계속해서, 매년, 시합을 했을, 한 번도 그 사람이 이긴 적 없는 압도적인 파워의 아마도 배구 관련으론 우리 현 내 최고 유명인사인 선배.
올해의 시합에서도 그 사람이 이기지 못한, 나한테 붙은 야유에 가까운 별명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동북 최강의 스파이커.
-같은 학년이니까, 계속해서 시합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지독한 질투를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절망을 안겨주었다.
1년이 지나고 꽃이 피었다 지는 3번의 계절과 아무것도 없는 1번의 계절을 빠짐없이 매번 마주쳤을 두 사람의 인연에, 나이가 두 살 적어서 그 사이클에 간신히 발만 걸치는 나는 질투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보다 더 나를 싫어하더라도, 그와 같은 코트 위에서 계속 만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 몇 번을 더 져버려도, 언젠가 반드시 이겨주겠다는 열망과 투지를 불태울 ‘다음’이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 사람과 가장 오래 시선을 마주치고 같은 열기를 뿜어낼 수 있던, 얼마 안하는 짧은 시합시간은 1년중에 단 며칠 피었다가 이윽고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선명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이제 내년부터 다시, 그 사람과 겹치는 공통된 시간이 없는 1년이 시작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남은 그 시합이, ‘학생’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기고 싶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갈망의 그늘 밑에 숨어있는 ‘다음’에 대한 지독한 갈증이 목구멍을 바싹 마르게 한다. 한 번도 뛰어넘을 수 없던 그 어깨가 이제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는 예정된 미래가, 눈앞에 피어있는 저 꽃이 얼마 안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져버린다는 사실처럼 차분하게 다가오고 있다.
봄이 다가오는 마지막 겨울에, 우리가 같이 피울 수 있는 마지막 계절의 꽃이 이제 곧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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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인명은 나오지 않게 그냥 1인칭 시점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