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전력 60분-[실수]
하이큐 전력 60분
실수
카게야마 토비오& 쿠니미 아키라
키타이치 중학교 시절
논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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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수.
실수는 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엔 안하도록 주의하겠지만 당장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게 마음바닥의 마개를 열었다. 방금 일으킨 실수는 물처럼 흘려보내고,하지만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해.
"쿠니미!!!"
등 뒤에서 버럭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전에 올려준 토스를, 그 완벽하게 정확한 틀리지 않는 지시를 지키지 못한 가신에게 질책을 내리는 제왕의 목소리.
"방금전에 그거 뭐야?!"
처음엔 저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좀더, 나보다 순진한 어린애 같은 목소리였는데. 변성기가 지난 그 목소리는 분노와 짜증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묻어나와서, 저절로 피곤함이 느껴졌다.
나는 요즘들어 더욱, 전력을 낼 기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봄이라서 졸리고 고등학교 수험이 시작해서 수업시간마다 더 피곤했으니, 눈뜨고 버티는게 매일의 관문이었다.방금전의 실수는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고, 갈수록 위압적이 되어가는 목소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나의 순간적인 판단미스에 이유를 대기도 구차해서, 솔직히 '미안'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잘못 읽었어. 주의할게."
"......대충 하지 마."
실수=대충? 무릎의 서포터를 당기던 손이 멈춘다.
킨다이치는 2학년들의 부름에 도와주러 벽쪽에 가 있었다. 녀석은 반응이 빠르지 않지만 못하지 않을 만큼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 준다. 킨디이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건,역시 제왕님밖에 없다.
"대충 한거 아냐."
"그럼 왜, 엉뚱한 곳으로 날린거야?너답지 않게."
어째서 저녀석은 나와 킨다이치와 같은 나이면서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걸까.
3학년이 은퇴하고, 새학기가 시작한 중학교 3학년의 봄. 나와 킨다이치,그리고 카게야마는 3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마지막 여름이자 마지막으로 전국에 나갈 시합이 다가와서, 여느때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능숙하게 연습을 하고있었다. 카게야마가 올린 토스를 미들블로커와 윙스파이커인 우리가 상대팀의 네트로 넘겨보낸다. 떨어지지 않게 받아내서 상대편이 떨어트릴 곳으로 보낸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 위치를 우리들의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은 시야로 읽어서, 공을 보내고,지시한다. 그 지시에만 따른다면 키타이치는 오이카와 선배가 있을때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게야마는, 내 인생 처음으로 보는-'천재'였다.
그리고 나와 킨다이치는 천재가 아니었다. 카게야마도 나도 킨다이치도 우리 팀원 모두 감독까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별나게 우수한 카게야마와, 평범하게 우수한 우리들. 그리고 그 우수함에 카게야마는 유명세를 타고, 우리들의 주장이 되었다. 우수한 천재니까 나도 킨다이치도 수긍했다. 카게야마가 아니면 우리중에 누가, 주장이 되어서 전국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을까.
카게야마는 전국으로 우리를 이끌기위해-정확히는 전국으로 '가기 위해'우리를 채찍질해서 끌어당겼다. 자기의 실력에 보폭을 맞추라고, 자기의 걸음에 따라오라고.
그리고 그게 가능한건 우리중에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천재였으니까.
"...신중하게 해도 실수는 하잖아, 사람이니까."
".....?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스파이크를 꽂았잖아, 너답지 않게."
카게야마는 인상을 쓰면서, 납득하기 힘든 뚱한 얼굴을 했다. 나답게,라. 물론 나는 주전을 하고 있으니 잘하는 편이다. 실수도, 매번 하진 않지. 하지만 할 수도 있는거 아닌가.
"실수했다고,인정했잖아. 대충 한거 아니라고."
".....그럼 담부턴 더 조심해."
카게야마는, 우리의 주장이자 키타이치 유일의 천재이자 과거의 오이카와 선배를 능가할지도 모르는 세터는, 완전히 납득하기 힘든 얼굴로 끄덕거리고 내 뒤에 대기중이던 다른 후보에게 토스를 올릴 준비를 한다. 바짝 긴장한 1학년이 간신히 닿을 만큼의 높이로 볼을 올려서, 역시나 간신히 쳐낼만큼의 방향으로 지시한다. 1학년은 완전히 생소한 표정으로 그 공을 치고, 손바닥을 보며 이상한듯 주먹을 쥐었다 편다.
당연하겠지. 저녀석의, 정확한 높이의 정확한 지시대로 올라간 공을 한번이라도 치면 그동안 쳤던 아마추어들의 공과 어딘가 많이 다르다는것 정도는 금방 느낀다. 다이렉트면 다이렉트, A퀵이면 A퀵, 실수하거나 방향을 애매하게 하는 법 없이, 자기가 지시한 그대로 날아오는 공. 한번이라도 그것을 받고나면 그동안 자기가 쳐온 것이 애들 장난인걸 깨닫고 위화감에 손을 펴보는것이다. 나도 킨다이치도 카게야마의 뒤를 이어서 스타트 멤버에 들어오고 나서, 그 격차를 느꼈으니까. 카게야마는 완벽하다.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 만큼. 우리는 그걸 알고 있었고, 카게야마는 따라오라고 명령한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다음!"
카게야마의 지시에 따라 다음 후보가 뛰어오른다. 아, 좀 낮다. 위치보다 일단 타점이 낮다. 손끝에 스치기만 하고 공은 네트를 넘지 못한다.
"똑바로 해!"
카게야마의 질책에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애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지금의 카게야마는, 어떤 온기도 없이 냉정하고 정확하고 강압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공을 올리고,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제대로 참가하는 연습에 저 1학년이 조만간 불참하게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카게야마."
"?뭐야,쿠니미?"
"실수 할 수도 있는거잖아. 왜 그렇게 봐주는게 없어?"
나는 별로 1학년을 위해 체육계의 상하관계에 대한 오랜 폐단을 지적하고 몸소 개선하고자 할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1학년 한둘이 그만두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니다. 주전을 대신할 만큼 재능있는 녀석은 없고 졸업후엔 내 알바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제왕님에게 화두를 내건것은 역시, 무엇때문이려나.
카게야마는, 요즘들어 더 찌푸리는 일이 많아진 이마를 더욱 찡그리며, 이렇게 말한다.
"실수를 계속해서, 그래서 전국에 나갈 수 있을거 같아? 그만큼 불성실하다는 증거잖아. "
카게야마는 실수가 없다. 오이카와 선배조차 컨디션이 난조일땐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 더 우수해진 상태로 돌아왔다. 그 중간에 어떤 복잡한 개인적 고민이 있었을지 모르더라도, 마지막 시합에서 베스트 세터상을 탄 오이카와 선배의 뒷모습에 나또한 존경심을 느꼈다. 실수란 없으면 좋지만 없다고 무조건 좋은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우수해도 힘들땐 실수를 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좀 더 성장한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실수하지 않았다. 내가 봐온 동안, 단 한번도.
"열심히 해도.....아니다, 아냐."
"? 무슨 말을 할려고 한거야?"
"됐어. "
한번의 실수로 카게야마에게 질책을 들은 1학년은, 울기 직전이다. 내가 끼어들어서 더 입지가 위태로워진걸까. 카게야마는 마뜩찮은 얼굴이었다. 일반인이 노력해도 못하고 실수를 하는 당연한 사실을, 여태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임금님같은 얼굴.
"쿠니미?"
불만스러운 얼굴. 나보다 약간 앳되어보이는, 그래서 더 자비없는 얼굴. 카게야마는 약간 이해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에게서 흥미를 거두고, 뒤에서 잔뜩 긴장한채 기다리는 다른 녀석들을 호명한다. 독재정권같은 연습. 이러고 만약 전국에 못가면,그땐 우리를 탓할려고?
"킨다이치, 잘 되어가?"
"어? 아아, 근데 나 가르치는거 잘 못해서...말로 설명하니 영."
킨다이치는 원래 좀 멍청한 얼굴이라 정감마저 든다. 킨다이치에게 배우는 후배들도 배우기 어려울진 몰라고 배구를 그만두는 일은 없겠지. 나는 킨다이치의 연습에 끼어들면서, 눈으로는 계속 완벽한 토스를 올리는 카게야마를 주시했다. 다들 긴장해서 그럭저럭 쳐내고. 카게야마도 딱히 언성을 높이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실수했던 그 아이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불쌍했지만, 신경 쓸 여력은 나에게도 없었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정확하게.
지시에 맞게, 나의 지시에 맞춰서.
실수는 용납하지 못해. 실수는 태만의 증거. 대충할려고 하니까 실수하는거.
카게야마, 너도 언젠가 실수를 할거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그리고 너의 그 실수를 누구도 봐주지 않겠지. 단 한번의 실수로-그것이 공이 아니더라도- 너는 모두에게 등돌려질거야.
왜냐면 주장인 네가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실수하면 전국에 가지 못하니까.
"부디 아무쪼록,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 제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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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6 하이큐 전력 6분 참가